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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텐 이순신제독

강동준 2024. 8. 25. 10:50

우리는 임진왜란의 과정과 결과를 알고 있지만 전쟁당사자는 당시는 물론이고 타지역의 상황도 전혀 모르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장군의 입장이 되어야 훨씬 생동감있고 긴장감이 있을터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란 발발 사실을 4월 15일에 들었다 경상우수영 좌수영 경상감사 등 여러곳으로부터 들었고 장군도 전라감사 병사 우수영 등 여러곳에 장계를 올리고 알렸다 18일경에 전라감사로부터 경상도로의 지원을 조정에 보고하겠다는 전갈도 받았으며 원균으로부터도 지원 요청을 받았다 장군도 장계를 올려 경상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시에도 위수지역이탈은 반란에 버금되는 대역죄이기 때문이었다 16일 관할 5관 5포에 전투대비령을 하였고 26일 조정에서 경상도 지원을 해도 되는데 좌수사가 알아서 판단하여 결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관할 5관 5포에 29일까지 좌수영 본영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시달하였으나 30일이 되어 5포에서 판옥선 20척 본영 4척이 전부 모였다 이날 회의에서 전라도 지역을 지켜야한다는 부하들과 경상도 바다는 조선의 바다가 아니냐는 정운장군의 주장이 서로 대립하였다 장군은 며칠을 기다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연합함대를 꾸리고 참전할려고 했으나 우수사도 오지 않고 연락도 끊기어 단독출정하였다 왜선의 규모가 100척이랬다가 300척이랫다가 500척이라는 정보도 있었으니 적의 정확한 규모도 모른채 출전하는것이니 두려움은 말할수 없이 컸으리라 첫 출정에 겁을 먹고 도망간 병졸을 붙잡아 심문하니 늙은 모친을 뵙고자 갔다고 하였으나 군기를 어겼다고 5월 3일에  참수형을 하고 다음날인 4일에 출정을 하였다 당시 출전하는 수군과 노꾼은 물론 떠나보내는 가족 친지등 여수백성들도 다같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6일 당포에서 원균의 판옥선 4척과 합류하여 28척의 판옥선으로 7일 새벽 옥포에서 첫 해전을 하였다 장군은 명령하기를 경거망동하지말고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고 하였다 첫 전투의 부담을 안고 전투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잠재우고 냉철함을 유지하여 신중하게 전투를 승리로 이끌려는 장군의 철저한 준비태세를 알수 있다 우리 수군은 천지현황 함포를 발사하여 적의 배를 파손시켜 격침시키거나 반파시키고 불화살을 쏘아 배를 불태우며 가까이 접근하면 화살을 쏘거나 별자총통을 쏘아 병사를 살상하는 전투가 주된 방법이었다 왜군은 빠른 속력으로 배를 몰아 상대배에 접근시키고 조총을 쏘아 기를 죽이고 상대배에 올라 백병전으로 제압하는 전술이 기본방법이었다
200미터가 넘는 먼거리에서 함포를 쏘아 적선을 무력화하고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는 불화살 화살로 공격하여 왜구의 등선육박전을 애시당초 막아버렸다 이러한 전투양상은 조선과 왜군의 장단점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향후 전투에서 작전수립의 큰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50여척이 있는 옥포만을 가로막고 있는데 6척의 적선이 먼저 도발하여 격침시켰고 나머지 적선들도 격침하니 살아남은 적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약 한시간의 전투로 승리하였고 저녁쯤에는 진해 합포에서도 전투를 하였다 이튿날인 8일에는 고성의 적진포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투를 하여 승리하였다 이후 남해 미조항에서 원균과 연합함대를 해체하고 9일 여수본영에 돌아오니 여수의 백성들이 기뻐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첫출정에서 승리한 장군은 몇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파악할수 있었다 적의 장단점도 파악하였고 우리수군의 역량도 확인하였고 판옥선의 위력 또 함포의 위력도 정확히 확인하였다 향후 전투태세의 대비는 물론이고 승리에 대한 자신감도 충만한 출정이었다
이 출정을 조정에 상세히 보고한 장계가 옥포파왜병장이다 원균이 공동보고를 요청했으나 장군은 각자 보고하자고 하였는데 함선수나 병졸수의 큰 차이도 문제였지만 중요한건 보고 방식의 문제가 더 컸었다고 여긴다 장계에서 장군은 부하들의 논공을 상세히 언급하며 누가 어떻게 몇척을 격침했는지 어떤 공을 세웠는지 심지어 노비인 노꾼이 어떤 공을 세웠는지 까지도 상세히 기록하여 보고하였다 따라서 장군휘하의 병졸들은 진급이 빨랐다고 한다 당시의 전과는 적의 머리를 베는 수급의 숫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장군은 전투중에는 수급만 베려는것을 방지하고 적선의 격침이나 노획에 가장 큰 비중을 두어 부하들의 전투성과를 직접 보고 있으니 수급에 연연하지 말라는 명령을 자주 하였다 1차 출정에서 누가 몇척을 격침하였는지 상세히 보고하고 21척을 격침하였고 5척은 경상우수영에서 격침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쌀 3백석 노획품은 창고3개를 채울 만큼이었다 우리 수군의 피해는 부상자 1명뿐이었다 이 승리는 조선수군의 첫승리이자 조선군의 첫승리이기도 하였다 평양성에서 이 장계를 받은 선조는 너무나 기뻐 장군의 품계를 올려주었다 1차출정이 가져다 준 성과는 이루 다 말할수 없을 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할수 있다 이를 기념하여 여수에서는 현재에도 5월 8일 여수거북선축제를 개최하여 기념하고 있다 옥포 합포 적진포 전투가 가지는 의미는 이러한 것이다

난중일기나 옥포파왜병장 징비록 이순신행록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등에 상세한 내용이 있으나 대강의 설명은 이렇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