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의 폭력성
어린시절 할아버지는 집안의 절대자 이셨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80년 3월에 돌아가셨으니 그때까지 나의 정신적 지주이고 집안의 가장이신 할아버지는 부모님과는 비교할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셨다 특히 나는 장손이라 특별한 지위와 관심을 받고 자랐다 누나와 남동생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존재로 성장하였다
아랫채의 방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으며 식사도 다른 식구들이 모두 안방에서 모여 밥을 먹을때 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셋이서 따로 먹었다 이말은 항상 좋은 쌀밥과 반찬을 먹었다는 얘기이다 보리쌀이 조금이라도 덜 섞인 밥과 고등어라도 구웠다면 맛난 가운뎃 부분이 상에 올라있고 난 언제든 맛나게 먹을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때에 따라 티브이 상자 서랍속에 있던 커다랗고 하얀 눈깔사탕도 먹는 특권이 있었다 대소가 집안 제사라도 지낸 밤이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밤늦게 가져다 둔 제사상의 과자랑 맛난 고기와 문어다리도 내 독차지가 되는건 당연한 권리였다
모든 일상 생활에서 집중된 관심의 대상이었고 또 그만큼의 통제대상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난 할아버지께 한자를 배웠다 지금도 첫구절이 생각난다 동몽선습 계몽편이다
上有天 下有地 天地之間 有人焉 有萬物焉
日月星辰者 天地所係也 江海山岳者 地之所載也
父子君臣長幼夫婦朋友者人之大倫也
日出於東方 入於西方 日出卽爲晝
日入卽爲夜 夜卽月星이 著見焉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만물이 있다.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매여 있는 바요, 강과 바다와 산은 땅에
실려 있는 바며, 부자. 군신. 장유. 부부. 붕우는 사람의 큰 윤리이다.
해는 동쪽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들어가니, 해가 뜨면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되며, 밤이면 달과 별이 나타난다.
먼저 한글자 한글자 한자음과 뜻을 외우고 그 다음으로 문장을 읽는 법을 배웠다 어느 음에서 조사를 어떻게 붙이고 문장의 어디쯤에서 끊어서 읽으며 마지막에는 전체 문장을 통으로 외워야 했다 하루에 두줄씩 글자를 외우고 문장을 외워 뜻풀이를 하는데 난 아랫방의 윗목에 양반다리로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책을 보지 않고 외워서 뜻풀이까지 해야 공부가 끝났으며 그때야 나가서 놀수가 있었다 며칠 지나 공부한 분량이 많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외우고 뜻풀이를 해야하는 복습을 하는데 잘 모르거나 전부 외우지 못하면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목침위에 종아리를 걷고 올라서면 대나무의 잔가지로 만든 가느다란 회초리로 5대든 10대든 맞아야 했다 종아리를 맞으면 난 입을 꾹 닫고 대답을 하지 않아 더욱 노하신 할아버지로부터 매타작을 당하곤 하였다 또 종아리는 가느다란 대나무의 매듭이 있는 곳에는 피가 맺히거나 피가 조금 흐르기도 하고 나머지 부분은 빨갛거나 파랗게 멍이 든다
여름방학에는 포도와 왕골하는 농번기라 공부는뒷전이지만 농한기인 겨울방학이면 어김없이 동몽선습 책을 꺼내들고 첫구절부터 다시 시작해서 외웠다
그후 중학교에 입학하고는 영어도 외국어라 한자처럼 외워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지론에 따라 교과서를 펴놓고 한자를 배울때처럼 양반다리로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며 통째로 외워야 했고 못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 ~ation의 발음이 ~에이션인데 이걸 몰랐다고 종아리에 매타작을 당한 경험이 있다 또래나 주위의 누구와 비교하여도 나만큼 종아리를 많이 맞고 자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부모님들도 인정할만큼 난 어릴때 종아리에 멍이 들지 않을 때가 별로 없을만큼 엄한 훈육을 받고 자란 특별한 성장기를 보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때의 나이가 된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당신께서는 훈육과 엄격한 교육의 한 방법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회초리를 들고 교육하셨을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요즘 티브에서 상담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에서 아동폭력의 피해자 유형을 설명하는것을 보면 내 마음은 깜짝깜짝 놀랄 정도이다 아동폭력 피해자가 겪는 후유증이나 반응이 내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선명하고 마치 복사판처럼 똑같아 내가 놀라기까지 한다 자손이 잘되라고 특별히 회초리를 들었다는 동기의 순수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 피해 유형이나 형태는 술먹고 때리는 아동폭력 피해사례와 한치도 다름없이 같다는 점이 놀랍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할수 있지만 그걸 생각하는 것조차 마음이 아프고 트라우마이기에 입을 닫는다
국민학교 4년시절 울산에 사시는 삼촌집에 할아버지랑 다녀온적이 있다 영남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조선소에 입사한 삼촌은 남목을 지나 조선소 후문과 정문 사이에 있는 회사사택에 살았다 거기서 조선소 정문을 지나면 벌판이었고 조금 더 가면 일산해수욕장이 있고 그뒤는 방어진이다 할아버지는 날 데리고 일산해수욕장 옆 바위에서 바다낚시를 하셨고 난 옆에서 놀다 지겨워 해수욕장에서 재밌게 놀았다 한참 뒤에 할아버지를 찾으니 낚시하던 자리에 계시지를 않았다 찾다가 배도 고프고 돈도 없어서 버스타고 오던 길을 되짚어 일산해수욕장에서 걸어서 집으로 갔다 고구마와 옥수수가 심겨져 있던 밭을 지나고 조선소 정문을 넘어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사택까지 무사히 집으로 와서 쉬고 있었다 잠시 뒤에 집에 오신 할아버지는 파리채를 거꾸로 잡고 종아리를 때리셨다 난 억울하고 너무 아파서 오랫동안 울었고 이날의 매를 잊지 못하고 지금도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주의력과 집중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재미도 없는 낚시를 간 어른의 잘못이나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어린이를 동반한 어른으로서 아동보호의 의무를 다했는지 또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에도 무사히 집으로 복귀한 손자를 보면 반가움이 먼저인지 보호자를 잃고 당황하고 황당했을 어린아이의 놀랜 마음을 진정시키는게 우선인지 잃어버린 손주를 찾느라 고생한 본인 마음의 안도감을 매로 다스려야 했는지 의문이다 내 자식들을 키우면서 단한번도 매를 들어 때려본적이 없다 아동폭력은 가해자의 선의여부와 무관하게 피해자에게만 남아있는 평생의 트라우마이다 내게 존재하는 화가 폭발하는 경우가 남들보다 자주 있으며 또 화가 나면 남들보다 더 심하게 폭발하여 주체할수 없는 성냄이 있다 사회생활과 주변 교우관계에 큰 지장이 있고 또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것은 상당한 부분 종아리를 맞고 자란 이유라 생각한다 내 마음의 아픔을 찾아 위로하고 보듬어 스스로 치유할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어린 시절이라 내게 애처롭게 토닥여 주며 스스로 위로를 하며 애정을 실어준다 잘 살아 왔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