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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의장대

강동준 2025. 3. 2. 08:03

가자 열차 2소대 5577부대 이 문장을 외우며 논산훈련소에서 3월 중순 훈련을 마친 나는 저녁을 먹고 더블백을 맨채 기차를 탔다 어디로 갈지 몰라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가지도 않은 10시가 되니 내리라 한다 서대전역이다 후방부대이구나 부대이름이 좋더니 복받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내린 10여명의 병사와 콤비 버스에 타니 어딘지 모르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인솔장교가 여긴 특수부대인데 너희들 자대가면 전부 엄청 빡시게 고생할거다 이런 말을 하며 겁을 주었다 부대 정문에 도착하니 통신병 헌병 운전병 등 주특기별로 데리고 가버렸다 주특기가 0 0이었던 3명은 본부중대 내무반으로 올라가면서 간단한 얼차려로 신고식을 하고서는 잠을 잤다

다음날 식당을 가니 위에는 빨간색과 초록색, 바지는 초록색 그리고 등에는 HONOR GUARD, 앞쪽에는 호랑이 마크가 있는 병사 3명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그들은 고참이 차려주는 밥을 급하게 먹고는 가만히 각잡고 앉아 있었다 의장대는 가면 안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마침 그날이 주말이라 외박나가는 고참이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자대배치를 알려준다기에 종조부 집전화를 알려주어 고향에 자대배치가 알려지기를 희망하였다
같이 대기하던 3명 모두 키가 180이 넘고 날씬한 체격이었다 우린 훈련소에서도 따로 불려져 신체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의장대 요원인걸 누구라도 알수 있었다 동기중 한명은 그 짧은 주말에 의장대 안갈려고 애를 썼지만 공염불이었다 출입문 바깥에 방패모양도안의 호랑이 얼굴이 새겨진 육군의장대 마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무반에 가니 말년병장 2명 그밑에 병장 1명 그밑에 막내병장 2명 이렇게 5명이 왕고참이고 이제 갓 일병을 단 1명이 있고 우리보다 한달 빠른 1월 동기 3명이 있고 우리 동기가 2월 군번으로 3명이었다 전역을 앞둔 의장대 고참들과 신입 병사가 늦어 내무반 인력수급  문제가 상당하였다 특히 안장행사를 할때는 12명이 필요한데 행사요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육군의장대는 국방부 육군본부 한미 연합사 1군 2군 3군 사령부 그리고 동작동과 대전 국립묘지에만 근무하는 부대이다 별넷이 있어야 둘수 있는 부대가 의장대이다 내가 근무하였던 부대는 육군교육사령부로 별셋 중장이 지휘관이다 이것은 80년대 초반 동작동에서 대전으로 파견되는 의장대를 특별한 권한이 없는 현충원보다 힘있는 교육사령관이 국립묘지 행사를 전폭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부대이동을 시킨것이다 충남 대덕군 탄동면 반석리 육군교육사령부가 자대가 된 이유이다
여기에서 평소 주간에는 정문입초를 서고 야간에는 정문동초를 서는 경계병으로 근무하다가 매월 1일 국기게양식과 매월 마지막주에는 의장대 전원이 국립묘지로 가서 1주일간 안장행사 훈련과 안장식을 하였다 또 특별 안장식이나 참배행사가 있으면 최우선으로 행사를 하는 부대였다 교육사령부가 부대이동을 하여 현재는 의장대가 대전국립묘지내에 배치되어 있다
대덕군 탄동면은 유성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20분쯤 떨어진 곳이다 고려시대때 숯을 굽던 망이 망소이 형제가 난을 일으킨 곳이고 바로 옆 인근 회덕은 우암 송시열의 고향이다 지금은 부대가 나가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상전벽해가 된 집단 주거지역이다

의장대 내무반에 가는 첫날에 더블백을 들고 샤워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문을 잠그고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는 고참들이 지칠때까지 구타를 하였다 몇시간을 맞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의장대는 차렸 서있는 자세부터 시작하여 좌향좌 등 방항전환 받들어총 등 경례 앞으로 가 등 제식  방향바꿔 걷기 열병 심지어는 보폭까지 맞추고 이동중에 총을 가지고 하는 모든 동작들을 배워야하며 총을 돌리고 던지고 받고 또 각종 대형을 만들어 보여주어야 하고 특히 파도타기는 훈련을 많이 해야 손발이 맞는 대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장대는 한달간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고참들이 도제식으로 모든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였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구타와 얼차려를 동반하였다 한달을 훈련하여도 행사에 투입될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기에 고참들은 더욱 빡시게 훈련을 시켰다 전역후 친구나 선후배들이 군대 얘기를 하면 의장대를 아는 사람이 없어 입을 다물고 듣는 편이었다 구타와 얼차려로 고생했다는 얘길 듣고 속으로는 별로 맞지도 않고 얼차려도 견딜만 한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체가 튼튼해야 행사장에서 오래 서 있고 모든 자세의 기본이 하체의 힘이기에 하체를 단련하는 얼차려를 엄청 많이 하였다 훈련이 끝나고 계단을 올라갈려면 근육이 터질듯하여 걸을수 없어서 팔로  자기 다리를 들어 가며 계단을 올라야 했다 총을 가지고 훈련을 하기에 개머리판으로 가슴을 맞는 것은 제일 편한 구타였고 총구로 가슴을 찍는 구타와 급소인 옆구리를 때리면 참기 힘들었다 동기들보다 1달 고참중의 한명은 훈련이 너무 힘들어 대검을 꽂은 상태에서 자기 목을 스스로 찔러 병원으로 후송가서 몇바늘을 꿰맸으나 봐주는건 없었다 고참들은 곧 전역을 앞두고 있고 신병들만 많은 내무반의 구조라 어쩔수 없었다 의장대 선임하사는 중사였고 의장대장은 중위였다 의장대장은 보직이 바뀌지만 선임하사는 말뚝 중사였다 간부들도 모든 상황을 알고 있고 사정을 훤히 알지만 누구도 고참들의 행태를 터치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올법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나간 세월이라 지금은 편하게 말할수 있으나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훗날 힘든 일이 닥치면 군대에서도 견디었는데 이 정도쯤은 너끈히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수 있었다

군대 졸병시절은 누구나 적응하느라 힘들다 그중에서 몇가지 기억나는 것은 의장대는 제복은 행사용 옷이니 그렇다치고 군화와 군복은 정말 칼같이 줄서 있고 반짝이는게 다림질과 구두닦는건 보통 이상의 솜씨였다 융이라는 하얀천으로 구두를 닦는데 구두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구두약을 듬뿍바르고 마지막으로 광을 내면 돈주고 닦는 것보다는 더 반짝 빛이 날 정도이다 문제는 구두를 닦은 하얀 천을 빨래비누만 가지고 찬물에 빨아야 했다 더구나 하얀천을 비누로 빨아 형광등에 비추어 검은 손가락 자욱이 없어야 했다 하얗게 빨려면 손가락이 바닥에 쓸려 피부가 까지기 일쑤였다 동기중 하나인 회성이가 성실하여 융빠는데는 선수였다 난 군화를 잘 닦아 딱새였다 지금도 현관앞 신발장에는 구두약과 하얀 융조각이 있어 아주 가끔 구두를 닦아본다
차렷자세에서 양 무릎이 맞닿지 않는 오다리 무릎은 잠잘때 허벅지, 무릎 그리고 발목 3군데를 벨트로 묶고 자면 한달내로 무릎이 맞닿을수 있다 누구나 차렷을 하면 어깨가 수평이 되지 않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깨가 낮거나 높다 이걸 교정하는 방법은 높은쪽 어깨를 계속 몽둥이로 맞으면 저절로 수평을 이루게 된다 이런 내무반 생활의 기본을 고참들은 집에서 각자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모시듯이 고참을 잘 모시면 된다고 강요한다 심지어 고참들 속옷까지 빨아주었다
졸병시절 밤12시에 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니 고참들이 내무반에 숨겨두었던 전기밥솥에 라면을 끓여 먹고는 먹다남은 밥과 김치 라면 국물을 밥솥에 부어 짬통에 버리라고 하여 갖다 버렸다 라면국물이 아까워 버리기 직전에 조금 마셨는데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최고의 맛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라면국물 맛은 잊히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고참들 병장 5명이 모두 전역한 뒤에는 바로 한달위의 고참이 왕고가 되었지만 우리 동기랑 차이가 나지 않아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아 상병부터는 편하게 지냈다 두달에 한번쯤 외박을 나가고 휴가도 가끔 나갈수 있으니 견딜만한 군생활이 되었다
고참이 되었을 무렵 교육사령관이 5공 실세였던 장기오장군이었다 이 분은 파티와 연회를 좋아하여 부대앞 관사에서 자주 파티를 하였다 부대내의 악기를 다루는 병사를 모아 그룹사운드를 조직하여 밴드를 만들었다 의장대 선임중사는 별다른 할일이 없어 파티나 연회의 부식준비를 하는게 주요 일이었다 중사님을 따라 전용 짚차를 타고 대전시내 중앙시장 골목을 누비며 안주거리와 부식을 사고 중앙데파트나 백화점에 들러 고급 안주를 위해 장보는데 따라가서 맛난 것도 먹고 시간을 보내는게 낙이었다
내가 전역한 87년 6월은 민주화 운동의 절정인 629선언이 있기 직전이었다 19일 개인화기인 총과 방독면 등 군수품은 반납을 하고 전역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비상이 걸렸다 모든 병사에게 실탄이 지급되고 전투복을 입고 군장을 꾸리고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지냈는데 심지어 군화를 신고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개인 관물을 전부 반납한 상태였던 난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밤새 아무런 일도 없었다 20일 토요일 오전 중대장에게 전역신고를 하고 부대를 나가야하는데 비상대기 상황이라 중대장도 어디에 갔는지 알수 없고 의장대장도 없다 아무도 전역자를 챙기지 않았다  내가 전역하는걸 보기 싫었던 동기 두녀석은 말년휴가중이었기에 20일 아침 나는 대충 동료들과 가벼운 인사만 하고 부대를 도망치듯 떠났다
주말 외박후 21일 일요일 밤에 대전 32사단 전역자 대기소에 입소하여 25일 목요일 아침에 전역하여 귀향하였다
의장대 졸병은 지옥이 따로 없지만 고참이 되면 천국이 부럽지 않은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