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준 2025. 3. 4. 07:59

20살 새내기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는 여사친이 있다 첫만남은 동아리 1박 2일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버스안이었다 난 자리가 비길래 털썩 앉았더니 옆에 서있던 여학생이 매너도 없이 양보하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다 동아리 동기생이다 가정대 영양학과를 다녔던 이 친구랑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거나 공강 시간이 되어 동아리방에 가면 항상 쪽지가 게시판에 꽂혀 있었다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항상 쪽지로 연락하고 소통하였다
내게 돈가스를 먹는 매너와 방법을 가르켜 주었고 칵테일을 마시는 법과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려 주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영화 사관과 신사, 무릎과 무릎사이 등 여자랑 영화보는 첫 경험도 함께 했고 식당에서 밥값을 자기가 내야하는 경우에는 항상 내게 돈을 건네며 남자가 사야지 보기가 좋다며 싱긋 웃는 아이였다

영양학과 친한 친구들 5명이 모여 판토마임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하는데 매일 각자 100원씩 돈을 모은다는 것이다 하루는 내게 어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니 판토마임 친구들 모임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회원 한명의 남자친구를 불러서 5명이 준비한 100문 100답을 하는데 자기 남자친구로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남친은 아니지만 참석하였다 여학생과는 같이 있기만 하여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막히는 어린 청춘이 5명의 여학생과 함께 있으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길고도 험한 백문백답의 취조시간이 끝나니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그후 그 친구들과는 가끔 교내에서 만나면 인사도 하고 편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여사친과 빈강의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집도 같은 방향이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어느 날은 집까지 데려다주고 와서 씻고 있는데 울면서 찾아왔다 엉엉 대성통곡을 하길래 가만히 안아주고 진정할때까지 기달렸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집안 사정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모친을 그동안 피하고 있었는데 자취방에 가니 저녁밥상이 차려져 보자기로 정갈하게 덥혀 있었고 빨간 구두를 방입구에 예쁘게 포장하여 댓돌위에 놓아두고 편지만 남기고 가셨다는 것이다 여사친은 가족이 아닌 남에게 그것도 남자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고 나중에 말해 주었다

군에 입대한 난 사회생활은 멈춰져 있어 친구들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상상만 하고 있고 학창생활중인 사회인은 군대간 친구는 가끔 떠오르지만 잊혀진 존재인게 현실이다 바쁜 학창시절에 수업시간중 내게 편지를 쓰는걸 본 판토마임 친구들이 다같이 내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편지 한통에 5명의 편지가 나란히 있는 것이다 신병시절이라 고참들의 강요에 따라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고참들은 내게 5명이 미팅을 하자고 제안하였고 거부권이 없는 난 편지로 상황을 설명하고 단체로 면회를 와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우여곡절을 겪고 5월 어느 토요일에 약속을 하였다 고참들도 다들 들뜬 기분이 되어 옷을 다리고 군화를 행사용보다 더 빛나게 닦고 토요일 오후만 기다리고 있었다 당일 오후가 되었지만 오후 늦게서야 친구 혼자 면회를 왔다 애시당초 5명이 면회온다는건 무리였다 바쁘고 재미있는 학교생활 중에 주말을 맞아 5명이 모두 시간을 내어 길도 모르는 먼 타도시로 와야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군인들을 면회온다는 점과 생소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의 세계인 군부대를 찾아온다는 것은 가정대 여학생들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혼자 찾아온 친구는 하늘색에 커다란 물방울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면회오면 토요일 외박을 보내주는데 그날은 어떤 이유인지 위병소 면회실에서 잠깐 앉아 얘기만 하고는 그냥 돌아갔다 정문에 서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찌나 이쁘고 아련한지 지금도 그 장면이 인화되어 뇌리에 남아있다 군대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면회 온 여자였다 그후 내무반에서 고참들에게 갈굼과 냉대를 당한건 어쩔수 없었다

문제는 당시 이선희 노래가 대유행을 하였다 J에게는 강변가요제 대상곡이었고 아! 옛날이여, 갈등 이런 노래가 메가히트를 하였다 내무반 녹음기는 이선희 테이프가 쉴새없이 틀어져 있을때이다
고참들은 J에게 노래를 틀어놓고 J라는 단어가 나오면 내게 녜 이병 강동준 이라는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라고 하였다 이 노래에서 J는 모두 16번이 나온다 노래 한곡을 들으면 난 16번 관등성명을 복창해야 했었다 내무반에서 빨래를 개거나 총기손질을 하거나 군화를 닦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 무엇을 하던중이라도 난 하던 행동을 멈추고 차렷자세로 녜 이병 강동준 관등성명을 크게 복창해야만 했다 당시 최고 인기가 있던 이선희 노래는 하루종일 쉴새없이 틀어져 있었다 한곡에 16번인데 하루에 몇번이나 듣는지는 셀수 없었다 심지어 훈련하러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국립묘지로 이동중일때는 떼창으로 노래를 부르면 난 중간에 어김없이 관등성명을 복창했다 이런 상황을 재미있어 하던 고참들은 시간이 나거나 또 지겨우면 졸병들에게 떼창으로 노래를 시키고 난 관등성명을 외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김천말로 해야 내 심정을 잘 표현할수 있다  진짜 엉기난다 엉기나여
그 친구의 이름이 재희였다

내 친구 재희는 삼천포 출신의 장녀이고 남동생이 3명이었다 지금은 자녀가 3명인 책임감있고 다정한 친구이다 가정사와 연애사를 비롯한 집안 사정과 환경들을 거의 다 아는 사이의 매우 절친인 관계이다 무수히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픈 얘기들이 넘쳐난다 순수한 20대를 비롯해 서로의 인생을 풍요롭고 따스하게 해준 인생의 베프였다 20대때에 주고받은 편지만 해도 100여통이 넘고 살아가는  중간마다 힘과 용기가 되어준 친구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존재의 이유를 더하였고 서로의 인생도 훨씬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준 그런 친구이다 내 인생에 들어와서 함께해주어 고마운 존재이다 행복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