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김천대학
2000년 총선은 바꿔 413이라는 구호로 유명한 총선이었다 이정현 가수가 부르는 로고송도 바꿔라는 제목으로 대히트를 하였다 새천년을 시작하는 해이며 새시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모두가 꿈꾸는 그런 환경이었다 또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결집하여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이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공천에는 낙천자 명단을 총선에는 낙선자 명단을 공개하고 실제로 낙선을 위해 선거운동에 개입하였다 구미에도 총선시민연대가 출범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다 YMCA 사무총장이 대표를 맡고 금오공대 학생회장 출신인 권세경이 사무총장이었다
한나라당 경북도당의 구미담당자가 금오공대 부학생회장 출신 조영삼이라 자연스럽게 총선시민연대의 권세경 사무총장을 소개 받았다 각자 처한 위치와 역할은 다르지만 허주 김윤환의 낙선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사무실에 찾아온 권세경사무총장이 진지하게 부탁을 하였다 바꿔 413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유권자들에게 발송해야 하는데 우편요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후보자가 길거리 유세를 하고 있던 임은동 새마을금고 옆 세차장으로 급하게 가서 의논하였다 후보는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다워야 하지 않느냐면서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일정을 모두 마친 저녁에 다시 얘기를 하니 경비를 지원해 주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바쁜 일정을 소화한 오후에 구미시청옆의 YMCA주차장에서 만나 우편요금 230만원을 건네주었다 또
선거 사무실은 불침번을 정해 밤새 사무실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불침번이 되었을때 후보의 친구 몇명도 밤새도록 술자리를 펴고서 동참하였다 이 자리에서 젊은층이 많이 살지만 투표율이 낮은 인동지역을 집중 공략하기 위해 바꿔 413 신문을 대량으로 배포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권세경 사무총장에게 부탁해 인쇄비용 200만원을 주고 신문을 추가로 인쇄하여 받았다
새벽시간에 젊은 청년자원봉사자와 지인들을 동원하여 인동 황상동 진미동 등 인동지역 아파트단지에 집중적으로 신문을 배포하였다
선거가 끝나고 권세경이 김성조 당선자의 약점을 알고 있어 국회 보좌진으로 갈것이라고 주변에 떠들고 다녀 수사기관의 내사가 시작되고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김대중과 김정일이 만나는 6월 15일 역사적인 순간에 김천검찰지청에서 조사를 받다가 긴급체포되어 김천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루를 지냈다 그후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지만 며칠뒤 보강수사를 통해 김천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경찰서 가는것도 인생에서 처음이라 엄청 당황했지만 모든 진술을 부인하면서 무죄를 주장하였다 선거법 위반은 공안범이라 별도의 방에 수감해야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 경제범방에 수감되어 생활하였다 식당하다가 부도난 사람 도박으로 구속된 사람 부동산을 속여 판 사람 별별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억울하고 누명을 썼으며 전부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너나 검찰의 공소장을 보고 물으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집사람과 애들이 면회를 오면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어린 아들에게 보이기 싫어 면회실 바깥문을 열어두고 애들은 밖에서 놀게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말 아프고 애처로웠다
도박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둑을 두는데 처음에는 마른 오징어나 땅콩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었다 자기가 몇점을 깔고 두다가 계속 이겨 상대가 바둑을 두지 않을려고 하니 오히려 상대에게 몇점을 깔고 두라며 내기는 진 사람이 물 한그릇을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 하루에 5되짜리 주전자를 다 먹을만큼 악착같이 두는데 도박은 진짜로 병인것을 알게 해주었다
밤무대 룸살롱의 밴드로 일하다가 절도로 온 사람은 술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는데 소설인지 주작인지는 모르지만 밤세계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끝이 없고 듣기에는 재미있었다
거창이 고향인 친구는 대구의 빵집에서 일하다가 낙향하였다 대구모임에 참석했다가 집에 가는 길에 차비를 술로 탕진하여 공원에서 노숙하던중 다른 노숙자의 말을 듣고 건축중인 건물에서 전선을 끊어 고물상에 팔다가 잡혀온 사람이었다 변변히 입을 속옷도 없어서 내가 속옷을 몇벌 사주었다
재판을 위해 출정을 갔다오니 방을 검사하고 수색하는 검방에서 담배가 내 소지품에서 나왔다 다른 재소자는 전부 모른다고 얘길했지만 거창사람이 면회를 한후 갖고 왔다고 진술하였다 담배소지죄로 나는 구치소안의 징벌방에 수감되었다
징벌방은 1평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자체도 징벌이지만 재소자가 가지는 불편함과 난관은 다양하고 생각보다 훨씬 밈들었다 이불과 베개는 저녁에 주고 아침에 가지고 갔으며 책은 성경이나 불경뿐이었다 면회와 하루에 한번하는 운동시간도 없어졌으며 지급된 음식외에 구매하여 먹었던 참기름 고추장 간장 마가린 등 밥을 먹기위한 모든 간식도 금지되었다 3년 묵은 쌀로 만든 교도소 밥은 맨밥으로는 도저히 먹을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세식이긴 하지만 앉아서 볼일보는 변기의 물로 세수하고 양치질을 하며 빨래도 하면서 생활하였다
나의 걱정은 판사가 구치소의 규율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법을 위반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게 했을까 염려되었다 멀쩡한 치아가 흔들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식사도 못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교도관과의 면담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불과 두어시간만에 흔들리던 치아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멀쩡하였다
미결수가 징벌방에 오는 일은 극히 드문일이었다 옆방의 소년기결수들은 그런 나를 신기해했다 기결수이면서 일하기 싫은 소년수들이었는데 미결수들은 상상도 못하는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내게 주었다 심지어 김치찌개와 비빔밥까지 만들어 주면서 아저씨 맛나게 드세요하며 동지의식과 아마츄어에게 자랑하고픈 프로재소자의 자랑이 은근히 베어 있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되어 징벌방에 수감된지 20여일만에 특사로 풀려나 미결수 방으로 되돌아 왔다 고등학교 동기가 교도관으로 재직하고 있어 운동시간의 혜택을 봤고 그곳에서는 귀한 얼음냉수도 얻어 먹는 등 나름 적응하며 지냈다 제일 기분 나쁜 일은 법원에 가기위해 출정을 하면 수갑을 차고 포승줄로 팔목을 묶어 여러명을 굴비엮듯이 끌고 가는게 제일 싫었다
추석도 그곳에서 보내고 날씨가 제법 쌀쌀할 무렵 1심에서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아 그날 재판에서 복귀하자마자 풀려났다 복역한 90일을 하루 3만원으로 하여 벌금을 차감해 주었다 그날 부모님이 차려준 집밥은 소고기국과 청국장 등 시골밥상이었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그후 가족들과 함께 부곡하와이로 여행을 갔는데 숙소 로비에서 당시 재판장을 만나 인사를 하였다 회계책임자의 벌금 1천만원은 현재라면 당선무효에 해당되지만 당시에는 그런 규즹이 없을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