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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야기

강동준 2020. 6. 23. 11:20

가방 이야기

 

80년대 이전의 농촌에는 관혼상제가 있으면 마을의 큰 잔치이기도 하였다. 그 집의 재력에 따라 돼지를 몇 마리 잡았다느니 소를 잡았다는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그 집이 잔치를 잘했다, 손님이 많았다는 등 뒷 얘기를 하였다. 이 당시는 도축장이 없어 대부분 잔치집에서 돼지를 잡아서 사용하였다. 동네 집집마다 키우는 돼지를 사서 마을 장정들이 무쇠솥에 물을 끓이고 돼지 머리를 도끼로 기절시켜 목을 따서 선지를 받고 끓는 물을 부어가며 돼지털을 벗기고 깍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돼지를 잡으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부위는 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끓는 물에 삶아 먹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귀한 고기를 함부로 낭비할 수 없고 여러 명이 고루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필요하였다. 그것이 잔치집에 등장하는 국밥이다. 여러 가지 나물들 콩나물, 고사리, 토란줄기, 대파, , 배추 등을 넣고 끓인 국밥은 참으로 맛나기도 하거니와 양껏 먹어도 되는 그런 음식이었다. 아니면 돼지머리를 푹 삶아 내장을 넣어 만든 돼지머리 국밥도 맛나기는 마찬가지이다. 잔치집의 국밥은 이렇게 크게 두 종류이다.

 

돼지 고기는 도축장도 없고 도축기술자도 없으니 뼈를 발골하여 고기만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이 돼지 앞다리, 뒷다리를 뼈가 있는 그대로 적당히 삶아서 수육으로 사용하였다. 적당히 삶는게 어려운데 이는 조금 삶으면 뼈가 있는 안쪽이 익지 않고, 많이 삶으면 겉부분이 너덜너덜해 진다. 동네에서 그래도 경험이 있는 어른들이 불 조절을 해 가면서 고기를 뒤집어 가면서 삶는다. 다 삶은 고기는 발목쪽에 구멍을 내어 광이나 두지라 불리는 곡식창고에 넣어 식힌다. 적당히 식은 고기가 칼질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잔치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데 제일 먼저 하는게 돼지를 잡는 일이다. 돼지를 잡아야 살코기는 잡채 재료로도 쓰고 각종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고, 비계로는 전을 부칠 때 기름으로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가방은 가짜 방이라는 뜻이다. 여기는 잔치집의 구조와 집의 크기와 손님의 규모에 따라 집의 내부중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서 사용한다. 어떤 집에는 광, 두지(곡식창고), 심지어 마굿간이나 헛간을 사용하기도 하고 적당한 곳이 없으면 임시로 천막을 두르고 만들기도 한다. 가방에는 부엌에서 만든 잡채와 전, 가오리 무침이나 도토리묵, 오징어 숙회, 방앗간에서 만든 떡, 인절미, 그리고 직접 고기를 썰지 않고 삐져서 만든 수육을 손님들이 몰려오기 전에 미리 접시에 수북이 담아 두는 곳이었다. 가방은 젊은 청년보다는 중늙은이들이 앉아서 일하는 것이 태반이다. 미리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의 수에 따라 내주는 경험과 고기를 삐지는 솜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을 모시는 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멍석을 깔아둔다. 손님들이 오는 숫자에 따라 쟁반에 각각의 음식을 주면 손님에게 내어준다. 이것을 배상이라고 한다. 배상은 동네 젊은 청년들이 주로 하는 보직이다. 손님들이 멍석에 앉으면 가방에서 내온 음식들과 주방에서 낸 밥과 국 또는 국수를 내어 준다. 물론 술도 한병씩 준다.

 

잔치수육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일반 수육이 있고 잔치 수육이 따로 있는건 아니다. 뼈채로 삶아서 썰지 않고 삐진 고기를 잔치수육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방에서 고기를 삐지는 방식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삐진 고기는 두께가 다르며 비계와 살코기를 함께 삐져야 맛이 제대로이다. 특히 잘 삶은 고기는 뼈쪽으로 가면 선홍빛을 띠는 순살코기가 있는데 이 부위는 살코기이지만 연하기가 그지 없다. 이가 약한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한다. 고기를 삐지는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너무 얇아도 두꺼워도 안되며 또 너무 커거나 작아도 안된다. 크기도 두께도 적당해야 하고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도 적당해야 한다. 김천에는 가방에서 삐진 고기처럼 접시에 담아 주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다. 아마 맛도 맛이지만 가방에의 추억이 아닐까 한다. 이 수육의 두가지 기술은 적당히 삶는 것과 잘 삐지는 것이 핵심이다.

 

이 수육은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지만 왕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가방에서 먹던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위에 놓여진 간장으로 전을 찍어 먹기도 하고, 국수에 넣어 간을 맞추기도 하고 고기를 찍어 먹기도 하였다. 잔치집의 간장은 이렇게 약방의 감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