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에서 계룡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유성CC가 있고 유성CC 맞은 편에 국립묘지가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가 더이상 안장할 장소가 없어 제2국립묘지를 찾다가 풍수지리에도 좋은 명당인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7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82년도에 안장을 시작했으며 85년도 11월에 개장한 국립대전 현충원이다 난 85년 3월부터 87년 6월까지 이곳에서 행사를 하였다 이등병부터 대령까지는 전부 1평이고 묘비의 상단부분이 병사와 장교가 다르고 묘역도 구분되어 있다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장군 등은 8평의 묘역과 화장하지 않고 안장할수 있다
행사는 크게 현충탑을 참배하는 분들을 위한 도열행사와 현충원에 묻히는 안장식이 있다
6월 6일 현충일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식당에서 특별히 끓여주는 라면을 먹고 행사복을 입고 현충원에 도착하여 6시에 처음으로 현충원장의 참배가 시작되면 들어갈때 받들어총을 하여 경례를 하면 기수단도 기를 내려 경례하고 현충탑 앞에서 헌화와 묵념을 하고 나오는 길에 또 받들어총을 하는 간단한 행사이다 이날 힘든 것은 대전 충남 지역의 기관장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참배를 하는데 적어도 오전내내 쉬지않고 참배를 한다는 것이다 흰색 바지에 빨간 줄이 있는 행사복은 앉을수도 없고 앉지도 못하게 한다 앉지 못하고 하루종일 서 있으니 죽을 맛이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현충일이 좋은 이유도 있다 동작동은 625참전 용사나 월남전 파병용사가 많아 세월이 많이 지나서 찾는 유가족들이 많지 않은데 비해 대전현충원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최근에 순직하여 묘비마다 찾아오는 참배객들이 많으며 순직한지 얼마되지 않은 슬픔으로 음식이나 과일도 많이 챙겨오는 것이다
오전에 기관장들의 현충탑 참배가 끝나면 오후에는 일반인들도 참배가 가능하다 또 늦은 오후에는 대부분의 참배객들은 돌아가고 없다 저녁이 되기전 사병묘역을 돌다 보면 6월이 제철인 참외, 딸기, 도마도, 수박 등을 비롯하여 소주와 담배는 흔하게 차려져 있다 가끔은 통닭과 족발 피자 등 평상시 순직한 병사가 좋아했던 음식도 차려져 있다 졸병을 데리고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이나 과일을 수거하여 음복하는 것은 현충일날이 주는 작은 선물이라 하겠다
안장식은 매월 마지막주 목, 금 이틀 치루어진다 유가족들은 순직했을때, 화장할때, 안장할때 세번은 놀라고 마음이 무너진다 현충관에서 안장식을 하는데 제단에는 화장한 유골과 위패가 있고 제사상차림 처럼 각자의 술잔과 조율이시에 따른 과일, 고기, 포, 전 등이 차려져 있다 안장식은 현충원장의 조사, 각군 대표들의 조사, 목사,신부,스님들의 종교행사가 있고 육해공군 의장대의 조총과 헌화 묵념이 끝나면 영현중대가 화장한 유골 한분 한분을 모시고 나와 기수단을 따라 묘역으로 이동하여 안장하면 행사가 끝이 나는 것이다 의장대는 행사장에서 하는 일이 제단을 지키는 호위병, 헌화시 꽃을 나누어주고 제단에 헌화하고 조총발사를 통해 넋을 위로하고 영현들이 퇴장할때 기수단과 함께 인도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슬퍼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고통이 함께하는 순간이다
안장식에 동원되는 병력은 육군, 해군, 공군 의장대를 비롯하여 헌병대, 영현중대, 군악대가 동원된다 매월 두번 안장식이 있고 한번에 약 40위씩 안장을 한다 안장식이 끝나면 제단에 차려진 제수음식과 술은 안장식에 동원된 병사들이 순번에 따라 가져간다 대개 3개월에 한번쯤 가져갈수 있다 가져간 제수음식은 내무반에서 먹는 특별식이 되는 것이다
육군의장대는 매월 마지막주에는 안장식 훈련을 하는데 주된 훈련이 조총발사이다 조총발사는 각군 5명씩 하는데 순서대로 육해공 세번 이루어진다 5명이 조총을 쏘아 총소리가 한명이 쏜것처럼 빵하는 소리가 나면 성공적인 조총발사이고 5명이 쏘았는데 빠방이거나 빠바방하면 잘못쏜 것이다 일발쏴 이렇게 구령을 하면 총을 쏘는것이다 빈총으로 쏘면 착하고 소리가 일치해야 한다 가끔은 실제 공포탄을 가지고 쏘기도 한다 이 훈련을 3일간 하루종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모한 일이고 쓸데없는 일인지 모른다 이런 허접한 일을 군인은 목숨걸고 하는게 군대이지만 조총소리가 빵이든지 빠바방이든지 유족들은 아무 관심조차 없다 오로지 고참들만 그 총소리 하나에 군인생의 승패를 걸었듯이 난리법석인 것이다 조총훈련은 사실상 핑계이고 얼차려를 통해 신체단련을 하는게 주된 목표인지도 모른다 선착순 오리걸음 또끼뜀 총뛰어넘기 푸시업 수많은 얼차려와 구타는 정신을 단련하여 눈빛이 살아있게 하였고 체력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에 공포탄 100개씩을 쏘며 훈련할 이유를 지금도 알지 못한다
85년 11월 현충원 개장식에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현충탑 참배를 하는데 들어갈때 받들어총 나갈때 받들어총 두번이면 끝나는 행사이다 평소에도 의장대는 받들어총 정도야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 그런지 아니면 서슬퍼런 5공 시절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의장대는 받들어총 이것만 한달을 훈련하였다 아침부터 일과가 끝나는 저녁까지 국립묘지에서 받들어총만 육해공 의장대 40명이 모여서 연습하였다 훈련도 아니고 연습정도의 수준이고 연습을 하거나 안하거나 차이가 없음에도 한달을 꼬박 연습하였다 당시 아웅산 사태의 여파로 총에서 대검과 공이를 제거했는데도 당일 경호실 요원들이 노리쇠 뭉치까지 가져가 총의 무게가 평소보다 가벼워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었다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행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부산동의대 사태로 순직한 경찰 5명만을 위한 안장식이었다 별도로 행사를 할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큰 일이었다 같은 젊은이로서 참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또 고등학교 동기생의 안장식을 하는 슬픔도 가슴에 남아 있다 이름도 생각나고 얼굴도 생각난다 슬픈 순간이었다 군생활중 모두 2500명 이상의 영현들을 안장하였다 모두 국가를 위해 희생된 분들인데 편안히 영면하셨기를 바랜다 전역후 두번 찾아가 보았다 힘들때마다 인생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