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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모임

강동준 2025. 3. 13. 08:25

국회의원들도 여러 종류의 모임이 있다 심지어 매일 국회 사우나에서 만나는 모임도 있을 정도로 모임이 많고 다양하다 보좌진들도 모임이 많다 지역이나 종교 취미활동 동창회 등 일반적인 모임은 기본으로 있다
04년도 예결위에서 일을 할 때였다 광주문화도시 건설 육성에 20년 동안  예산 2조를 배당한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 일을 잘해 예산을 많이 가져가는 것을 깎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 고향 지역도 그와 비슷한 정도의 예산을 요청하고 또 기재부는 지역균형을 고려하여 예산을 배정해 주는게 일반적이다 경주역사도시 예산을 신청하였는데 당년 예산 60억 지원이 끝이다 아무리 열린우리당이 집권여당이더라도 야당지역과 예산배정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이에 격분한 보좌진 몇명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였다 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예산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이고 다방면의 활동을 할수 있는 모임결성으로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매일신문의 최재왕기자와 일신학원이 본가인 김구환 선배를 중심으로 대구경북 국회의원실에 근무하고 있으며 대구경북이 고향인 순도 100퍼센트의 성골 10명 정도가 모여서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제일 막내가 포항 국회의원을 한 김병욱이었다 경상도 보리문둥이라는 말에서 모임 이름을 보리모임이라 정하였다 보리문둥이는 붕당정치시기인 조선 후기 영남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면 보리 문동(文童)들이 또 상소를 올리러 왔구나 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리모임의 활동방향이 지역의 일에 앞장서며 조직적 대응을 하고 지역 출신들과 교유하면서 지역발전에 힘쓰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대구시나 경북도 또한 서울사무소를 운영하는데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대구시와 경북도가 보리모임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활용하였다 지역지 기자와 지역출신 보좌진을 다 모아 놓았으니 서류를 들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모임의 선배나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단체로 대응하자고 의견이 모아지면 그만큼 일의 속도나 추진력이 빨라져서 대구시나 경북도는 일하기에 수월하였다
05년 대구 동구와 영천에서 동시에 보궐선거가 열렸다 대구 동구의 열린우리당의 후보는 노무현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수석이었다 상대로  나온 후보는 박근혜대표의 비서실장이자 비례대표를 사퇴한 유승민후보였다 집권여당의 실세가 출마하여 승부의 예측이 어려웠다 보좌진들은 선거에 능숙하고 민원인이나 유권자들을 만나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할수 있는 선거에는 최적화된 요원들이었다 보리모임의 회원들은 조를 편성해서 보궐선거에 투입되었다 동촌유원지 숙박업소에서 장기투숙을 해가며 선거지원을 조직적으로 하였다
결과는 여당실세 이강철 후보를 이기고 유승민의원이 승리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이 점점 비대해 졌는데 회원의 문호를 확대하여 대구경북 출신이면 어디에서 근무를 하든지 가입할수 있었고 더 확대하여 대구경북 출신이 아니어도 대구경북 의원실에 근무하면 회원이 될수 있게 되었다 회원이 늘어날수록 초창기의 모임 취지와 정신이 흐려지며 퇴색되었다 민주당 박찬석의원의 보좌관이 모임에 나왔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으며 서울 출신의 여자 보좌진이 박정희대통령을 박통 박통하다가 혼쭐이 나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모두 회원이 확대되어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시 경북도 또한 회원이 수십명에 이르니 관리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리모임은 충청도나 경남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모임이 활성화되었고 다른 지역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한동안 보리모임의 회장을 1년간 역임하면 그 다음해에 한나라당 보좌관 협의회 회장을 하는게 마치 관행처럼 수년간 이어질 정도였다 보리모임 회장이 한보협 회장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니 타지역 보좌진이나 반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응집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보리모임과 한보협은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갔어야 했는데 몇몇 한보협 회장들이 자기 목표를 위해 손쉬운 길을 택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다른 지역의 조직적 반발에 보리모임 회장 출신이 낙선하는 일이 생겼다
이후 보리모임을 만든 창립자이긴 하지만 회원들은 모르는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나이든 보좌진이 참석하여 괜히 눈치를 주는것 같아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 아직도 보리모임은 모이고 경조사 연락은 오고 있다 옛날 소규모 인원이 모일때는 선후배간의 인정도 있었고 사람사는 멋도 있었으며 일도 재미있게 하였다 이런 말을 하는걸 보니 뒷방 노인네가 되었다는게 실감난다 그래도 보리모임을 만든 마음과 그 절정의 순간들을 경험하였고 아직도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으니 이만하면 창립멤버로서 뿌듯하다 그만하면 잘 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