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단독으르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여러가지 상황과 환경이 맞아야만 어떠한 일이든 생긴다 교통사고도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여러가지 조건이나 환경이 일치할때 생기는 법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이 생길려면 그 뿌리가 있고 여러번의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98년도 쌍용회장인 김석원의원이 회사에 집중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사직한 달성군의 보궐선거가 있었다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는 5공인물인 안기부출신의 엄삼탁씨였다 여기에 맞설 마땅한 민자당 후보가 없었는데 대구의 맹주격인 강재섭의원이 박근혜후보를 발탁하여 추천하였다 박근혜 신드롬을 일으키며 가뿐하게 당선되었다 선거의 여왕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박근혜의원은 2000년 대선의 차떼기당의 이미지를 벗고자 천막당사로 이사하고 선거를 진두지휘하여 백전백승하는 선거의 여왕으로 활동하였다
2007년 대선후보를 노리는 이명박 시장에 맞서는 후보로 박근혜의원이 라이벌이었다 이때 당내 경선을 관리할 당대표 경선이 2006년 전당대회였다 친이계에서는 일찌감치 이재오의원이 당대표 후보로 나섰다 강재섭의원은 대선후보로 나갈 생각이 있었지만 자기가 발탁한 박근혜의원의 위세에 눌려 결국에는 당대표 출마로 선회하였다
친이계의 대표로 나선 이재오후보에 비해 강재섭후보가 상당히 열세인 상황이었다 당내의 영향력과 지분은 박근혜의원이 이명박 시장보다 훨씬 막강하였다 즉 친이의 대표인 이재오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강재섭후보는 친박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였다 또 친박계는 이재오후보의 당대표 당선만큼은 두고 볼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박계는 이재오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좀더 중립적이거나 가깝다고 생각한 강재섭후보를 돕는 전략적 선택을 하였고 결과는 강재섭후보가 당대표가 되어 친이를 견제할수 있는 카드를 가지게 되었다
당대표가 된 강재섭대표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각 후보들은 선거관리가 공정하지 못하고 상대 후보가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친박의 입장에서는 당대표선거에서 떨어질 사람을 도와 대표를 만들었는데 중립이라고 표방하면서 친이편을 든다고 생각하였다 친이계는 강대표가 친박계 도움을 받아 대표가 되어 친박편이라 생각하였다
이명박대통령이 당선된후 친이계는 친박을 공천에서 배제하여 친박연대라는 당이 생겼고 친박연대 무소속도 당선되는 등 2008년 선거는 친이계가 친박을 몰아내는 총선이었다 이때 당대표였던 강재섭은 공천파동의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친이계로부터도 배척되고 친박계로부터는 당대표가 되도록 도왔지만 대선경선에서도 배신하고 총선에서는 친박몰살에 앞장선 대표라는 앙숙의 원흉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이 된 박근혜후보는 대선을 겨냥한 공천을 준비하였다 지난 대선경선의 경험을 살려 친강계는 공천에서부터 전부 배제하였다 경기 광주의 정진섭, 서울 강남의 이종구, 대구의 이명규, 서울 중구의 나경원, 부천의 이사철, 구미의 김성조 등등 10여명 이상을 모두 공천에서 배제하였다 2006년 전당대회와 2007년 대선 경선 2008년 총선에서의 경험이 2012년 배신자 친강계 배제라는 결과를 가져온것이다
거기에 더해 2009년도에 친이계인 안상수 원내대표와 런닝메이트로 정책위 의장을 하였다 안상수대표는 친이계의 대표적인 강성인사였다 그런 원내대표와 합을 맞춘 정책위의장으로 이명박대통령과 함께 비상경제대책위의 멤버로 일하였으니 친박계로부터 미운털이 더더욱 박히게 되었다 원래도 친강재섭계로 분류되어 곱지않은 시선이었는데 더욱 나쁜 사이가 되었다
당시 친박의 핵심으로 알려진 영남대 최외출 교수와 중학교 동기여서 공천에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 만날라고 하였다 만날 약속을 했지만 최외출 교수가 그날 몸이 좋지 않아 만남이 연기되었다 자존심이 상한 김성조의원은 두번다시 최교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또 최경환의원을 만나라고 조언하였으나 본인이 선수가 더 높으다며 부탁할려고는 안 만난다고 하였다
공천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경북도당 회의에 가는데 상대후보가 원하는 어떤 방식이든지 환영한다고 하면서 상대가 원하는대로 해주라고 자신만만해 하였다 그후 여론조사 방식과 대의원 투표를 두고 결정하지 못하다가 난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자고 주장하였다 또 조영심여사도 강민규비서를 불러 제발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자는 의견을 주장하고 건의하라고 강력하게 몇번이나 요청하였다 공천결정방식 당일 아침에 당의 주요 멤버 10여명을 신평의 싱글벙글 복어집으로 불러 회의를 하였다 아침식사를 하며 의견을 조율하여 최종 공천방식을 여론조사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친박계가 친강계 낙천을 기획하고 있었고, 최경환 장관아래 지식경제부 공무원으로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있고 박근혜의원의 보좌진과 소통하여 내밀한 약속을 받은 상대후보에게 지는 결과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수 있다
낙천후 후보등록 하루전 5시 55분에 우체국 팩스로 탈당계를 도당에 제출하여 무소속 출마를 하였으나 아무도 없이 강민규비서 하나뿐인 보좌진과 대부분 도망간 지역의 선거운동원들과는 도저히 선거를 치룰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어 공식 선거운동 하루전에 후보직 사퇴를 종용하였다 결국 탈당은 하였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후일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아 박근혜정부의 정무수석직을 제안받기도 하였다 끝까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면 아마 그런 제의도 없었을 것이다
2012년의 공천은 이런 친박과 친강의 구원과 협력, 배신의 결과이자 산물이었던 것이다 상대 후보가 좋거나 더 나은 인물이 아니라 물갈이 대상으로 낙인찍힌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깊은 속사정과 내막을 잘알고 있으면서도 후일 강동준 보좌관이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후보 결정을 건의하여 잘못된 판단으로 낙천하였다고 책임이 마치 내게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뛰어나거나 위대한 지도자는 물론이고 리더는 부하의 허물도 자기의 허물로 삼아야 리더십을 발휘한다 소인배는 자기의 잘못도 남탓으로 돌린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전쟁중인 장군이 부상당한 병사의 피고름을 직접 빨아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아버지도 장군이 부상부위를 입으로 빨아주어 목숨걸고 전투에 임해 전사하였는데 이제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또 전사하겠구나 하며 울었다 한다
리더십이 무엇인가 생각나게 한다
정치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이치이다 뿌리를 알아야 원인을 알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