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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따라 이사가기

강동준 2025. 3. 19. 16:32

주말부부를 하는 사람을 두고 대개 위로하며 3대가 덕을 쌓아야 할수 있다는 말을 한다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신혼때나 연애할때의 가슴떨림과 자주 보지 못함을 느껴보고자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주말부부를 8년정도 하였다 국회에서 가까운 서강대교 넘어 광흥창역 근처에서 6년을 있었고 염창역 근방에서도 2년 정도를 살았다 대학생의 자취와는 달리 직장인이라 숙소는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이었다 두터운 요를 몇장 깔고 잤으며 이불을 개고 다시 펴지도 않았다 식사는 거의 사무실에 출근하여 하였다 집 청소는 이불이 깔리지 않은 곳만 걸레로 닦으니 매일 하여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빨래는 세탁기가 있어 양말 속옷 가리지 않고 한번에 하면 1주일만에 한번 정도 하였다

보좌관의 일이 술자리가 많은 편이고 또 술을 마시는 양도 적지 않다 더구나 혼자 있으니 더욱 술 약속이 많았다 그래도 건강을 잃지 않은 이유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은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먹었어도 아침을 거르지 않았다 대부분은 출근하여 구내식당에서 3끼를 전부 해결하였다 균형잡힌 식단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사무실 아래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편리함 때문에 매일 이용하였다 국회앞 시레기국 콩나물국 대구탕 북어국 등 아침에만 특별히 싸게 파는 식당을 가끔 이용하기도 하였다
대구에서 서울로 파견나온 지역지 기자나 공무원들에게 건강을 잃지 않으려면 꼭 아침식사를 당부하고 싸고 맛나며 먹을만한 식당을 추천하였다

금욜 오후 3시가 넘어서면 영등포로 버스를 타고 가서 새마을호를 타고 내려간다 타자마자 피곤하여 잠을 자고 깨면 수원 근처이다 대전까지 오면 그때부터는 집에 다 온 기분이다 구미에 도착하면 집으로 바로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누군가 만나야 하는 약속이 항상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후회되고 인생에서 최고로 바꾸고 싶은 순간이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놀아주고 성장기의 정서함양과 짧은 아동기를 부부가 공동으로 육아에 힘쓰야 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참으로 후회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정에 충실해야 할 시기였는데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여 미안하기 그지없다 당시에는 내가 맡은 사회생활과 일을 열심히 하는게 최선이라고 착각하였다 또 만나자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였다 지역에 상근하는 보좌관에게 얘기하거나 상담하여 서울로 전달하는 우회 경로보다는 직접 얘기하는게 좋고 빠른 해결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금토를 보내고 나면 일요일은 절반 정도는 가족과 함께 있을수 있었다 그나마 숙취해소 하느라 비몽사몽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집안의 가장으로는 0점이었다 월욜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 10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 도착할수 있었다

2008년 큰애가 중1, 작은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내 나이가 44살이 되었을때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렵고 자식교육을 위해서도 더 이상 따로 사는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구미집을 팔고 돈을 전부 모아보니 목동의 25평 전세금 정도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집을 둘러보고 2억3천만원에 전세계약을 하였다 김성조의원에게 설명하고 이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국회의원을 계속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데 의원을 안하게 되면 서울에서의 삶과 내 인생을 책임져 줄수 없다는 늬앙스로 말을 하면서 이사를 오는건 아니라며 반대하는 것이다
그말에 속상해 하면서도 어리석게 부동산 중개소에 전전세를 놓아 달라고 하며 이사를 포기하였다 부동산중개료만 100만원씩 두번 주었다

초선의원 시절 김성조 의원은 서울 목동으로 가족 전부가 이사를 와서 지역구인 구미에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서울에 살고 있어도 지역으로 이사를 와야 하는데 지역민은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과 편안함을 위해서 이사를 갔다 지방의원 출신이며 지역을 누구보다 아끼고 발전시킨다면서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이라며 호된 질타가 있었다 당시 주요 반론으로 직장이 서울인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직장생활하는게 정상은 아니라며 강변하고 사방으로 사람을 대신 만나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서 동분서주한 기억이 있다

나도 직장생활을 위해 초반부터 바로 이사를 갔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후회한다 2008년에 이사를 갔어도 따로 산 기간이 6년 정도되어 늦은 감이 있었다 결국 2010년이 되어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왔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중3, 중1이 되어서야 이사를 왔다 사내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정서적으로 민감하고 교육에 피해가 크다고 한다 자식키우는 재미가 가장 좋은 초등학교 시절의 순간들인 8년을 따로 지내게 되어 가슴의 한으로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시기이고 기회가 다시 온다면 절대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순간이다 그 어떤 순간보다 바꿨어야 하는 잘못된 상황이었다 나도 내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을 위해 이사를 왔어야 했다 땅을 치며 통곡하며 후회한다 가족을 위해 이사만큼은 왔어야 했다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이다 평생의 한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많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