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에 실패한후 재수할 마음도 변화를 위해 노력할 마음도 없이 흐르는 물처럼 세월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불알친구 창호랑 학과는 다르지만 교양수업은 같이 수강하여 다니고 있었다 같은 방에서 하숙하던 창호와 길섭이는 하숙집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만화책을 보는 순진한 대학생이었다 창호는 50원을 넣고 갤로그를 하면 끝까지 하기 때문에 오락실 주인이 돈을 돌려주고 가라고 하는 갤러그 덕후였다 대학생이면 의례히 하던 당구도 치지 않았다 그저 수업듣고 집에 가는 재미없는 학창시절이었다
난 유네스코 학생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여 나름 열심히 활동하였다 이 동아리는 당시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조국순례대행진을 광복절 즈음에 주관하는 동아리였다 애석하게도 여름방학에는 포도와 왕골 일을 하기 위해 조순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후발대로 이천에 가서 광복절 행사만 참석한 적이 있다
이렇게 무의미한 대학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군대를 가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대학입학을 하면 자동으로 신병검사가 미루어지고 휴학을 하면 그제야 신병검사를 하고 입대일이 정해지던 시기였다 휴학시기를 잘못 맞추면 휴학하고서 1년 정도까지 하염없이 놀다가 입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공백기가 없이 휴학과 동시에 군입대를 할 목적으로 재학중 신병검사 신청을 하였고 학기중에 신체검사를 하였다 3급인데도 현역입영 대상이라고 하였다
특별하지도 않은 대학생활중 11월에 동아리 동기들과 술을 먹고 싸움이 일어나 집단 폭행을 당해 턱뼈 두군데가 부러졌다 카톨릭병원에 2주간 입원하였다 턱뼈가 부러지면 기브스를 하는 방법이 윗니와 아랫니를 교정하듯이 연결하여 묶어버린다 그렇게 하면 씹을 수가 없고 액상으로 된 묽은 음식만 마실수 있다 씹는 것을 애시당초 방지하여 턱뼈를 보호하는것이다 그해 한달을 우유 미숫가루 미음 등 마시는것으로 살았다 그랬더니 원래도 66킬로로 마른 몸이었는데 마지막에는 60킬로가 채 되지 않았다 1월초에 기브스를 풀고 밥을 먹으니 너무나 좋았다 옆집 살던 면사무소 방위형이 2월 8일 입대하라는 입대 영장 통지서를 갖다준다 난 입대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뭔일이지 황당해 하였다 급하게 알아보니 재학중 신체검사를 신청한 사람은 입대신청을 한것으로 간주하여 입영통지서를 발송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라도 회복한 다음에 입대하고자 연기신청을 할려고 했으나 불가능하였다 자진입대 신청자는 입대연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몸이 아파도 연기가 가능한데 난 이미 기브스도 풀었고 회복단계이기에 진단서 발급도 안된다고 한다
휴학을 하고 입대까지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학생신병검사를 신청하였지만 결과는 입대를 해야만 하는 의무조항으로 작동하였다 또 아픈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입대하는 불운이 겹치게 되었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는데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시는걸 보았다 박박 깎은 머리에 썼던 모자를 동네 친구이자 집안인 상욱이에게 줄려고 돌아섰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난 못본채하고 입영문을 들어섰다 다행히 훈련소 내무반 내 옆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선배인 김태섭형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체육과 출신인 태섭형은 통통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강한 체력과 신속한 행동으로 자기 일을 먼저하고 나를 도와주었다 잠잘때는 바로 옆에서 나란히 자기때문에 내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당시 훈련병들은 대부분 그랬겠지만 사열준비를 하던 와중에 상관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는지 알수는 없는데 훈련조교가 갑자기 급발진하여 전 중대원을 소운동장에서 개처럼 포복하게 하고 뒤에서는 몽둥이 찜질을 하였다 아픈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체력적으로 힘들고 짐승같은 대우를 당하니 서러웠다 더러워진 군화를 씻으러 수돗가에 갔는데 몸이 날랜 태섭형은 벌써 할일을 마치고 날 도와주기 시작했다 수돗가에서 태섭형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군대에서 흘린 첫눈물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더 힘들고 고달픈 의장대 생활도 참고 이겨냈지만 당시의 설움은 태섭형이 있었기에 울수 있었고 이길수 있었다
불침번 설때 관물대 군화속에 몰래 숨겨두고 먹었던 340원에 4개가 들어있던 팥빵은 왜 그리도 맜있는지 모르겠다 2월의 각개전투장은 눈녹은 흙탕물과 훈련복에 묻어 얼어버린 진흙이 뻣뻣해 사람인지 얼은 동태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군화에 적응하지 못한 발뒤꿈치는 양쪽 모두 진물이 흐를 정도였다 라면봉지를 덧대어 조금이라도 쓸리지 않게 하였지만 아픈건 매한가지였다 시간이 지나 적응하니 발뒤꿈치도 아무런 상처가 없다
지금도 기억난다 논산훈련소를 떠나는 밤에 알려준
가자 열차 2소대 5577부대
이 부대명을 듣고 난 적어도 나쁜 자대는 아니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 부대는 좋은 부대였다 다만 보직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