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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이모저모

강동준 2025. 2. 6. 11:07

정동은 정릉이 있었기 때문에 정동이라고 불리워졌다 정릉은 조선 초대 왕후인 신덕왕후 강비의 능이다 원래 4대문 안에는 능을 조성하지 못하는게 법이었다 하지만 신덕왕후를 너무나 사랑한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아마 영국대사관저 자리로 추정하고 있다 근정전에서 매일 바라보았고 왕후를 위해 흥천사를 건립하고 매일 예불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사후 태종 이방원은 도성안에 능을 둘수 없다는 법에 따라 정릉을 현재의 북한산 아래 성북구로 옮기고 정릉의 석물들을 청계천 광통교의 부재료로 사용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덕왕후 강비의 석물을 밟고 다니게 하는 모욕을 준것이다 지금도 광통교 교각을 보면 범상치 않은 석물들이 있는데 공을 들인 석물임을 알수 있다

또 정동은 구한말 외국 공사관이나 관저가 많았는데 이는 하수나 오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우리 문화에 따라 광화문 일대가 살기가 불편하여 상대적으로 정동은 약간의 언덕이라 비교적 민가도 적고 깨끗하여 외국 공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궁궐의 돌담이 늘 그렇듯이 운치있고 상당히 높다 또 예상외로 덕수궁 돌담길은 짧다 돌담길이 끝날무렵 왼쪽에 있는 고풍스런 건물이 언덕에 있는데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정면은 고딕양식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서초동으로 이사가기전의 법원건물이다 정면만 옛모습 그대로 두고 나머진 개축한 건물이다
덕수궁 입구에서 만나 가정법원의 판결로 이혼을 하면 올라갈때는 같이 가지만 내려올때는 각자 내려온다고 하여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생긴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옛 법원이라 생겨난 속설의 유래이다
봄보다는 가을이 더욱 운치있는 돌담길이다

정동길 근처에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장소인 중명전, 정동제일교회, 대한신아일보, 이화학당, 아관파천의 러시아공사관 등 역사적인 장소와 돌아보기에 좋은 볼만하고 거닐만한 골목길이다 덕수정의 오징어 볶음이나 중명전 앞의 단일메뉴인 추어탕만 파는 남도식당, 정동길 끝자락쯤 경상도 국시를 파는 정동국시도 좋고 아니면 초입의 리에제 와플은 서울 3대 디저트로 유명하다

사랑하는 만큼 알게되고
알게되면 새롭게 보인다
그때보이는 것은
전에 보는것과
다르게 새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