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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댁 손자

강동준 2025. 2. 19. 05:54

어린시절 먹은게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할때 손톱위를 바늘로 찔러 검은 피가 나오면 속이 편해지는 경험이 다들 있을것이다 나는 손톱위를 따는 경험보다 침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침을 맞고 또 정강이뼈 옆쪽에 침을 놓고 침을 돌리거나 침을 살짝 자극을 주어 낫게 하는것이다 이래도 낫지 않으면 손가락 발가락 끝에다 침을 맞으면 트럼이 한번 나오고 속이 시원하고 편안해 지면 다 나은 것이다 침을 맞는 잠깐의 고통을 견디면 금방 속이 편해지니 참 신기해 하였던 기억이 있다
가을걷이가 끝이나면 연탄이나 화롯불에 약탕기가 있고 문종이로 덮여진 약탕기는 구수한 한약냄새를 풍기고 하얀 김을 가습기마냥 품어내고 있다 삼베보자기에 나무꼬챙이로 약을 짜는 엄마의 구겨진 인상에서 한모금이라도 다 짜야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어릴적 보약을 자주 먹었다 녹용넣은 보약을 두세첩씩 해마다 먹었는데 쓰디쓴 한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마셨자 보약은 장손의 자격을 증명함과 동시에 권리였는지 모른다
아랫방 윗목에는 두모서리를 접은 약종이 20장을 2열 종대로 놓고 도매집에서 떼어 온 약을 하나하나 놓고 싸는 광경도 흔하였다 나도 약을 싸겠다고 약봉지를 받아 싸보지만 할아버지처럼 매끈하게 싸지 못해 포기하곤 하였다
집에는 늘 백삼이 있어 딱딱한 백삼을 조금씩 뜯어먹고는 하였다 약쓰는 작두에 감초를 썰때에는 부스러기를 먹으면 얼마나 단물이 많이 나오는지 삭카린 못지 않다
광이나 뒤꼍에는 가마솥에 쪄서 말린 약쑥 다발이 항상 있었다 쑥잎을 훝어와 커다란 봉지에 넣어두고 쌀알보다는 크지만 작게 비벼서 만든 쑥뜸을 미리 만들어 쟁여 놓고 가끔씩 뜸을 뜨면 얼마나 뜨겁던지 지금도 따끔거리는듯 하다
할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동네에서 손목이나 발이 삐거나 잠을 잘못자서 입이 돌아간 구안와사이거나 체한 사람들 또 약이 필요하면 챙겨주는 간판도 없고 이름도 없는 시골의 한의사였다

할아버지가 한의사가 되는 과정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625전쟁당시 인민군의 후퇴로 부역자로 몰린 할아버지는 동네 대밭에 토굴을 파고 1년여 숨어 지내셨다 이때 입구를 막은 캄캄한 토굴에서 한의학을 독학하셨고 침은 직접 몸에다 놓아가면서 연습을 하셨다고 한다 이후에 동네 한의사로 일하지만 아마도 자격증이 없는 야매라 돈을 받고 치료하는 의료행위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훗날 1959년도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인 동양침구학원의 학생증이 있는것으로 보아 야매한의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제도권내의 자격증을 취득할려고 어떻게 노력한 증거라 생각되는데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어떻든 나는 태어나면서 늘 불리우는 호칭이 있다 약국댁의 손자였고 나는 약국집의 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