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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밖의 남자

강동준 2025. 2. 23. 10:59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대체로 음치이거나 예술적 재능은 부족하게 태어났다 그래도 조부는 단오날이 되면 동네 느티나무 옆에서 그네를 타고 놀적에 장구를 메고 가락을 타신 기억이 있기는 하다 또 외삼촌도 노래를 곧잘하고 노래방도 좋아한다
누나는 교대 면접시험에서 음계를 잘 따라 부르지 못해 애국가까지 불렀다고 한다 나에게는 노래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와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장면이 세번 있었다 이 장면들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국민학교 4학년 담임이던 황시영 선생님은 학교 전체의 브라스밴드의 지도교사이셨다 가끔은 학급 음악 시간에도 학교 브라스밴드처럼 큰북 작은북 실로폰 트라이 앵글 캐스터 네츠 피리 등으로 합주를 하였는데 키가 큰 나는 큰 북을 쳤다 처음 몇박자는 잘 따라갔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큰북이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고 다시 처음부터 합주를 하기를 여러번하여 나는 미안한 마음에 친구들을 쳐다 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음악 실기시험을 치는데 당연히 노래를 하여야 했다 내 차례가 와서 노래를 해야하는데 난 노래를 하지 않았다 창피하여 안한 것이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실기시험인데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화가 난 선생님은 내게 주먹쥐고 엎드려 뻗혀를 시키셨다 그래도 난 끝까지 노래를 하지 않았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팔은 힘이 떨어져 몸이 축 늘어졌지만 시험 시간이 끝날때까지 노래를 하지 않았다 국민학교시절 시험을 치면 단한번도 양이나 가를 받지 않는 모범생이고 우등생이었는데 4학년 2학기에는 실기시험을 치고 미술은 양, 음악은 가를 받은 기록이 유일하게 있다

김천고등학교에는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이안삼이란 음악선생님이 계셨다 향토에서는 교가를 작곡하는 작곡가이시며 성악을 보급하는 일도 하셨다 신입생이 입학하면 악대부를 뽑기 위해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첫 음절만 듣고는 다음 또 다음하는 분이셨다 평소 버릇이 성악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인 입을 크게 벌리고 음을 잡는 소리를 자주 내는데 학생들이 흉내를 내고 따라할 정도로 특이하였다 학기가 끝날 즈음 노래를 부르는 실기시험을 하였다 노래는 선구자와 기다리는 마음 두곡 중에서 택일하여 부르면 된다 반에서 제일 키가 큰 나는 맨 마지막에 두곡중 좀 쉬운 노래인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귀를 기우리네

피아노 반주를 쳐주던 선생님은 앞의 학생들이 부를 때는 첫구절에서 그만 하고 다음 학생을 불렀었다 마지막 내 차례가 되니 내가 노래를 완창할때까지 그만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못하는 노래를 억지로 다 부르는데 엄청 힘들었고 창피하였다 잠시후 노래가 끝나자 피아노 반주를 하던 선생님이 일어나 반학생들 전부에게 박수를 치라고 유도하였다 큰 박수가 끝날즈음 선생님은 날 가운데 세워두고 박수를 치라고 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방금 새로운 노래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순간이라며 새로운 노래를 불러 신곡을 작곡한 내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것이라고 말하였다 참으로 기막힌 순간이다

군에 입대하여 의장대에 배속되었는데 의장대는 제식을 비롯하여 모든게 일반병들과 달랐다 의장대에서는 신병이 오면 한달간 신병교육을 하는데 인사방법, 걷는 방법은 물론이고 총을 다루는법 돌리는법 열병 등 짧은 한달안에 배워야할게 너무나 많았다 그중에는 일과시간이 끝나고 내무반에서 의장대가를 비롯한 총을 가지고 제식을 하는 동안 부르는 노래가 몇곡이 있다 신병이라 고참이 선창을 부르면 따라 부르면서 배웠다 우리 동기는 세명이었다 노래를 배우는 동안에 동기들은 앉아서 노래를 배우고 나는 침상에 머리박기를 하고 노래를 배웠다 고참이 선창하고 가르키는데 잘하지 못하니 고참을 무시하는 놈이라고 얼차려 상태로 배운것이다 땀은 흐르고 목소리는 안나오고 정말 힘들었다
의장대는 행사가 없으면 할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종종 사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초소 근처에서 풀베는 일을 하던 휴식시간에 고참이 내게 노래를 시켰다 참새와 허수아비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고참은 내게 욕을 하면서 넌 다음부터 절대로 노래를 하지말라고 심하게 창피를 주었다

이 세번의 노래에 대한 경험은 노래방을 비롯해서 어디든 누구앞이든 노래가 두렵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이 있으면 노래를 하지 않는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자주 만나는 친한 지인이거나 술에 만취한 경우가 아니면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친한 지인들은 내게 노래를 강요하지 않는다 자식들도 모두 노래를 못한다 노래 못하는 순서를 매기는 것도 웃기는 얘기지만 그래도 난 아버지보다는 낫다고 자부한다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노래방 가는걸 즐거워하는 집사람을 위해 노래방을 함께 가줄 마음은 있다 노래는 내 인생의 아픔이다 음치는 얄미운 운명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