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이던 78년 서울 종조부께서 우리집에서 치질 수술을 하고 몇달간 계셨다 병원에서 수술한게 아니라 야매로 치질 시술을 하시고 요양차 계셨는데 마침 1학기 성적표를 보시고 커서 서울대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비롯해서 전부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해 여름에 난 대구의 유신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배우기 위해 단기반에 등록하고 학원을 다녔다 대현동에서 살고 있던 외삼촌과 꼭지 이모 그리고 모친의 사촌인 춘호외당숙과 경애 종이모가 사는 집에서 한달간 살게 되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 산을 오르듯이 올라가면 산꼭대기 즈음 달동네에 있는 집이었다 외삼촌은 고등학생이었고 막내이모는 풍국면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춘호외당숙은 한의대를 가기위해 재수중이었다
큰길로 나와 2번 버스를 타면 신도극장 칠성시장을 지나 경대의대를 지나면 유신학원에 도착한다 어느날인가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인 파동까지 간적도 있었다 촌에서 온 내게 10층이 넘는 큰 건물 전체가 학원이라 그 규모에 놀랐으며 또 수많은 학생들에 놀랐다 수학은 기본수학을 배웠는데 선생은 모르겠고 빨간영어를 가르키는 선생은 기억난다 오른팔이 불편해 마이크를 목에다 걸고 왼손으로 판서를 하며 가르키던 탁정길선생이었을 것이다 오전과 오후에 수업을 들었으며 쉬는 시간에는 빈강의실에서 예습이나 복습을 하였다 가끔은 대입재수생들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중계해주는 고교야구 대회를 듣기도 하였다 대봉기는 대구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대구상고와 군산상고의 대결은 모두가 귀기울여 청취하였다 춘호외당숙도 유신학원에서 재수를 하여 도움을 많이 받았다
대프리카의 더위는 대단하여 가끔은 2번버스를 타고 대현동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가서 경북도청, 수성고량주를 지나 3공단인 노원동에서 내려 공단안에 사시는 대구종조부집에 가기도 하였다 공단이라 공기는 좋지 않지만 공장 2층에 있는 집에 가면 에어컨이 있어 너무 시원하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들러서 에어컨 바람을 쐐고 대현동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막내이모는 쉬는 휴일에 나를 데리고 신도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산울림의 김창완이 주인공인지 노래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벌써라는 영화를 보았다 또 동촌 유원지의 출렁다리도 돈을 내고 건너보았고 연탄불에 구워주는 20원짜리 쥐포는 처음 맛보는 천상의 간식이었다
당시에는 가뭄이 심하면 고지대에는 수도물이 나오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수도물이 끊어지면 물차가 와서 먹는물 정도는 보급해 주었다 고지대 사는 억센 아줌마였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먹을 물과 씻을 물을 받아올수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어린 나이의 이모와 외삼촌은 상주 시골 출신들이라 달동네 억센 아줌마들과의 경쟁을 뚫고 물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웠다 슬레이트로 지어진 방두칸과 부엌이 있는 조그만 집에서 수도물이 나오지 않아 라면만 끓여먹고 학원을 다녔다 라면마저도 끓일 물이 없어 생라면을 먹기도 하였다 난 학원을 갔다가 종조부집으로 가서 차려주신 밥을 먹고 씻을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외삼촌과 이모들은 어떻게 씻고 먹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틀을 꼬박 라면만 먹으니 라면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물이 없어 생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14살 소년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물어셨다 뭘 배웠냐 하시는데 당시 나는 인생을 배웠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잔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