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23

일하는 여름방학

넓은 들판이 있는 우리 마을은 산골에 비해서는 비교적 잘사는 마을이었다 여기에 우리 마을과 가까운 마을들은 왕골재배를 하였다 왕골은 모내기 즈음에 심어서 8월에는 키가 2미터까지 자라는 작물이었다 넓은 들에는 벼를 심고 마을안의 다락논이나 들판의 구석자리에 자투리로 남은 조그만 논에는 왕골을 심었다 집집마다 400평이나 600평 정도만 심었는데 이는 많이 심어도 한꺼번에 왕골을 할수 있는 인력도 없고 또 많이 심어도 그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왕골은 가족끼리는 도저히 할수가 없고 동네에서 품앗이가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 많이 드는 농사이다 왕골은 장마가 끝난후 8월초에 시작을 한다 왕골은 품앗이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서로 연락하여 오전에 두어집 오후에 두어집만 해야 일이 진..

카테고리 없음 2025.02.20

포도밭과 원두막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서 비스듬히 오르막을 50미터쯤 지나면 산아래 동네진입로가 있고 넓은 들판이 나오는데 도로와 들판 사이에 밭이 조금 있는데 도로아래 밭이 우리 포도밭이다 68년도부터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일은 당시에 귀하였기에 포도밭 울타리는 탱자나무였고 수확철인 여름에는 당연히 원두막을 만들어 지켜야 했다 거기에 더해 포도밭을 한바퀴 실로 둘러서 실을 건드리면 화재경보처럼 울리는 장치를 설치하여 도둑을 예방하였다 이웃마을이나 동네 주민들이 가끔씩 보리쌀과 물물교환도 하였다 과수원의 한해는 겨울부터 시작이다 한겨울에 가지치기 즉 전지를 하고 포도나무 껍질을 벗겨 혹시라도 있을 벌레들을 소탕하는 것이다 굵은 본나무는 껍질이 잘 까지는데 얇은 가지는 껍질을 벗기는데 애를 먹었고 그 일은 지..

카테고리 없음 2025.02.19

약국댁 손자

어린시절 먹은게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할때 손톱위를 바늘로 찔러 검은 피가 나오면 속이 편해지는 경험이 다들 있을것이다 나는 손톱위를 따는 경험보다 침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침을 맞고 또 정강이뼈 옆쪽에 침을 놓고 침을 돌리거나 침을 살짝 자극을 주어 낫게 하는것이다 이래도 낫지 않으면 손가락 발가락 끝에다 침을 맞으면 트럼이 한번 나오고 속이 시원하고 편안해 지면 다 나은 것이다 침을 맞는 잠깐의 고통을 견디면 금방 속이 편해지니 참 신기해 하였던 기억이 있다가을걷이가 끝이나면 연탄이나 화롯불에 약탕기가 있고 문종이로 덮여진 약탕기는 구수한 한약냄새를 풍기고 하얀 김을 가습기마냥 품어내고 있다 삼베보자기에 나무꼬챙이로 약을 짜는 엄마의 구겨진 인상에서 한모금이라도 다 짜야하겠다는 의지..

카테고리 없음 2025.02.19

부역자 집안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사회주의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양양에 계실때에도 레닌 맑시즘에 빠져 있었다 해방이후 시골에 계신 증조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식솔들이 많아 도저히 양양에서는 살수가 없어 낙향하셨다 그후 625때는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북한군에 부역을 하게 되었고 국군이 수복하게되자 부역자를 처벌하는 것을 우려하여 후퇴하는 인민군을 뒤늦게 쫓아가셨는데 상주 문경 충주까지 따라갔지만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김천 경찰서에서 이웃마을로 부역자를 찾아왔는데 부역자가 산으로 도망가다 총을 맞아 숨졌다고 한다 그 경찰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할아버지를 찾기에 집에 없다고 하여 따돌린 작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당시 면사무소에 근무중인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얼른 피신을 하였다 밤중에 ..

카테고리 없음 2025.02.18

할배의 탈 농촌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촌에서는 대부분 경제권을 그집의 가장이 쥐고 있다 도시의 급여생활자들은 전업주부들이 경제권을 가진것에 비해 가을에 수확하여 일년여 긴 기간 지출하고 상대하는 사람들이 외간남자들이라 아녀자들이 경제권을 가지긴 어렵다 또 우리집은 할아버지가 젊어서 오랜 기간 가장 노릇을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1920년생이셨는데 두분 모두 당시로서는 드물게 국민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이셨다 할머니는 한자가 많은 신문을 줄줄 읽으실 정도였고 할아버지는 영어 일어 중국어도 하셨는데 어린 내가 그 수준을 알수는 없었다 어린시절 나는 집안의 가장인 할아버지의 절대적 영향아래에서 성장하였다 농촌의 가장은 그 집에서 절대자였다 부모님도 일을 하거나 용돈을 타거나 외출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가장의 절대적 권위를 한..

카테고리 없음 2025.02.18

같은 음식, 더 맛나게 먹기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나 순서 또는 불의 세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같은 음식이라도 더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고 그냥 먹는 사람도 있다 이왕이면 같은 음식을 더 맛나게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난 맛없는 음식을 먹고 배부르면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맛난 음식을 먹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상쾌하고 유쾌하여 기쁘다 하루에 세번이나 음식을 먹으니 기분 좋을 수 있는 기회가 세번이나 있다 무얼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맛나게 먹는것도 중요하다 모든 음식은 식당이나 만들어 준 사람이 제공해준 그 상태 그대로 먼저 먹는게 제일 좋다 이것은 나중의 맛 변화를 위한 기본이다 기본맛을 알아야 맛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알수 있고 비교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기본 ..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진지드시러 오시랍니다

음력 9월 중순은 농촌에서는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수확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일년 농사의 수확이라 기쁘기도 한 풍요로운 시기이다 가을 이슬이 마르기 전인 이른 시간에 발걸음에 신이 난 나는 이슬에 신발이 젖고 발이 시려도 마냥 즐겁게 뛰어다니며 마을 집들중에서 같은 일가인 대소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건네집에 들러 할아버지 할매요 진지 잡수러 오시랍니다 그러고는 밑의 집에 들러서도 진지 드시러 오시랍니다 큰집에서도 새집에서도 대문간에도 어럼터 할매집에도 들러서 진지 드시러 오시랍니다를 하고 다녔다 이날은 할아버지 생신이라 동네 집안 어른들을 초대하여 아침밥을 대접하는 날이다 또 이날은 나의 생일이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생신날이 장손자인 나의 생일이니 잘 차려진 할아버지의 생일상은..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삶의 무게

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는 어쩌면 복이 많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모르고 자랐고 또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항상 사회는 발전하고 삶의 질도 향상 되는 시절을 살았고 지금처럼 인생스펙을 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거나 경쟁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세대 일수 있다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손들과 각자의 삶을 사는 첫세대일수 있다나는 조부와 부친의 뒤를 잇는 장남으로 태어나 누나와 남동생이 있지만 집안의 장손으로 귀하고 엄한 아들이자 손자로서 살았다 유아시절이야 누구나 그러하듯이 귀한 장손으로 이쁨을 받고 성장했으리라 짐작된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곧잘 공부를 잘하니 누나와 남동생에 비해 훨씬 더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교육에 매진하였을거라 생각한다 겨울방학이면 한문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2.14

16개월만에 만난 벗들과 해후

오늘 번개모임이 결정되고 난후 내겐 큰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그려지고 있었다 발병부터 중환자실 퇴원 무균실 이식 림프구이식 숙주반응 10미터를 걷지못하고 계단은 아예 오르지 못하고 이식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숨가쁘게 조여오는 맘속의 갈등 불안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있었는데 그런 모든 순간들을 지나고 16개월만에 만날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또 이젠 앞으로 자주 볼수 있을거란 부푼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어떤 코스를 돌며 무슨 말을 하고 소개할까 또 무얼 먹을까 등등 기쁜 고민의 연속이었고 오늘 새벽에는 3시가 못되어 잠에서 깨어 아침까지 자지 않았다 내게는 오늘의 만남이 그렇게 큰 일이었다 물론 톡으로 매일 만나지만 오프로 보는건 정말 기쁘기 그지없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라는 말이 실..

카테고리 없음 2025.02.09

정동길 이모저모

정동은 정릉이 있었기 때문에 정동이라고 불리워졌다 정릉은 조선 초대 왕후인 신덕왕후 강비의 능이다 원래 4대문 안에는 능을 조성하지 못하는게 법이었다 하지만 신덕왕후를 너무나 사랑한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아마 영국대사관저 자리로 추정하고 있다 근정전에서 매일 바라보았고 왕후를 위해 흥천사를 건립하고 매일 예불소리를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사후 태종 이방원은 도성안에 능을 둘수 없다는 법에 따라 정릉을 현재의 북한산 아래 성북구로 옮기고 정릉의 석물들을 청계천 광통교의 부재료로 사용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덕왕후 강비의 석물을 밟고 다니게 하는 모욕을 준것이다 지금도 광통교 교각을 보면 범상치 않은 석물들이 있는데 공을 들인 석물임을 알수 ..

카테고리 없음 2025.02.06